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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오랜만에 쓰는 엄마 일기. 육아 일기가 아닌 엄마 마음 한 부분을 집어 올리는 일기.
트루먼 커포티의 『인 콜드 블러드』를 다 읽었다. 인간의 어두운 마음. 충동. 욕망. 가장된 평온. 작가가 6년 동안 집필했고 그 이후에 다른 작품은 쓰지 못했으며 술과 약물에서 헤어나지 못해 결국 생을 마감한 것도 무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. 어떤 작품은 쓴 사람의 목숨과도 바꾸게 되는 것이다. 아니 목숨과 같은 것, 목숨 그 자체인 것이다.
이 어두운 책은 나를 두렵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힘을 주기도 했다. 한동안 이 책이 지닌 어둠과 내 안의 우울이 섞인 물 같은 공간을 떠다녔다. 손목 저림이 만성질환으로 자리 잡히는 걸 느꼈다. 간만에 낸 이력서가 또 퇴짜 맞았다고 단정지었다. 기다리던 문학상 예심평이 떴을 때 설렘이라곤 1도 없이 암담해졌다. 심사위원 당신들은 왜 늘 그렇게 시니컬한데.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다. 나란 인간과 내 작품, 매력 없이 늙어만 가는 건 아닌가.
기도를 드렸다. 절실하나 현실 감각 떨어지는, 판에 박힌 기도. 인간이기에 원망의 화살을 밖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쉽게 비뚤어지거나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했다. 계속 읽고 쓸 것이다.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. 나름 최선을 다했으며 보상 받을 만도 하다는 누추한 자기위안에 무감각해질 것이다. 서서히.
잠자리에 누웠을 때 아이가 내 손을 쥐며 말했다. 우리 손 잡고 자자. 사랑둥이. 얼마나 예쁜 아이인지. 이제 내 삶에 독자적인 영역이란 없다.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,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, 무언가를 치우거나 만드는 모든 작업이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. 나는 어떤 면에서 무너지기 쉽고 예민하며 금세 우울해지고 마는 유형이지만 여지없이 한 덩어리가 된 관계에 있어서는 파수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. 그것은 내가 선택한 기쁨이야. 고통을 묻게 하는 기쁨.